RFID 對 바코드, 4년 전 시작된 논쟁 … 식지 않고 재점화
지난 2009년 말, 제약업계가 떠들썩했다. 지식경제부와 보건복지가족부 그리고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개최한 ‘제약+IT컨버전스’가 발단이었다. 이 컨버전스는 제약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의약품 유통 및 생산과 IT분야의 융합을 추진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발표내용은 업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 지금까지도 갑론을박을 낳고 있다.
현재 제약업계는 의약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것뿐만 아니라 병원이나 약국 등 곳곳에 유통하는 과정까지 총괄하고 있다. 의약품을 신속하게, 그리고 각 약마다 보관 기준에 맞추어 각 공급처에 제공하려면 아무래도 직접 수행하는 쪽이 가장 안심이 된다.
제약업계에서 비용과 노력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접 배송을 도맡는 것은 의약품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다. 유통과정에서 유실되거나 관리가 잘못되어 변형을 일으켰을 때 소비자가 감내해야 할 고통과 피해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크다. 이에 약을 직접 만들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제약업계에서 팔을 걷어붙이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에는 각 제약회사들이 만든 제품들을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책임의식과 기업윤리가 작용한다. 각 회사가 만든 제품들을 소비자들에게 안전하게 제공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하지만 만약 제조과정에서 잘못되었다거나 유통과정에서 성분이 변질된 약이 소비자에게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각 업체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자사에서 생산한 의약품을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두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유통을 포함한 모든 생산과정에서 불량품이 발생했을 때 즉시 회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과정에서 약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할 수도 있다. 이 시스템은 업체에게 혹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눈이 되어준다. 이 추적시스템은 바로 ‘바코드 리딩’이다.
바코드 리딩
바코드를 이용해 생산물을 추적하는 방식은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슈퍼마켓·백화점·서점 등 이제는 일상 속 어디에서나 바코드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바코드 체계는 생산물을 효율적으로 추적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바코드 안에 간단한 생산이력을 담아낼 수 있어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을 파악하기 쉽다.
사전에 따르면 바코드의 구성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바코드는 EAN 코드라는 것으로 13자리로 이루어져있다. 첫머리의 세 자리는 나라명(한국은 880), 다음 네 자리는 제조업체명, 그 다음 다섯 자리는 상품명, 끝머리 한 자리는 코드의 에러를 체크하기 위한 숫자 기호이다.
최근에는 2D 바코드 리딩 기술이 개발 및 보급되면서 기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1차원 바코드는 주로 13∼14자리의 숫자 데이터를 표시하지만 2차원 바코드는 1000자 이상의 데이터를 담을 수 있다. 한국어 외에도 많은 외국어는 물론, 지문을 비롯한 그래픽 정보를 표현할 수도 있다. 이 대표적인 예가 바로 QR코드이다. (바코드 리딩 기술은 본지 8월호에 더욱 자세히 기술되어있다.)
정부, RFID 손 들어줘
이제 지난 2009년으로 돌아가자. 정부가 ‘제약+IT 컨버전스’를 발표하던 때이다. 정부는 “국내 제약 산업의 경쟁력이 부족한 것은 근본적으로 이익률이 높은 신약 제품군이 부족한 데 기인하고 있다. 선진국은 의약품의 90% 가량이 전문 도매상을 통해 유통되는 반면 한국은 제약회사의 직거래(46.5%)와 도매거래(53.5%)로 분산되어 유통구조가 복잡하다. 전문 도매상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어왔다”고 밝혔다. 또한 “의약품은 비싼 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조가 쉬워 가짜 의약품 거래가 세계적으로 문제되고 있다”며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자식 의약품 이력추적 제도(e-Pedigree) 시행을 앞두고 있어 우리나라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수출산업화를 위해서는 RFID 등 첨단 IT 기술을 도입한 의약품 유통관리 체계의 선제적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RFID 기술 도입을 적극 권장하였다. 즉 세계 각국에서 시도하고 있는 RFID기술을 우리나라에도 도입해 ‘선제적’인 구축을 실현하자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2D 바코드 기술이 도입 및 활성화되고 있는 시점에 RFID와 같은 신기술을 도입하라는 골자의 발표는 자리에 있던 제약관계자들의 의문을 샀다.
왜 RFID일까?
그렇다면 정부는 왜 굳이 RFID라는 제도를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려 하였을까. 이는 당시 RFID기술이 국내외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기술이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 기술이 왜 각광받는지를 알기 위해선 RFID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정의: 사전에 따르면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기술이란 IC칩과 무선연결을 통해 식품·동물·사물 등 다양한 개체의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차세대 인식 기술이다. RFID는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의 정보를 초소형칩(IC칩)에 내장시켜 이를 무선주파수로 추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태그 및 판독기의 독특한 생김새나 전송 방식을 본 사람들은 ‘전자태그’ ‘스마트 태그’ ‘전자 라벨’ ‘무선식별’ 등으로 부르고 있다.
역사: 1939년, 영국에서 비슷한 기술을 이용한 IFF(Identification, Friend or Foe) 자동응답기가 개발되었다. 이 기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기에 부착해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데 이용되었다.
7년 뒤인 1946년, 소비에트 연방의 레온 테레민은 첩보전을 위한 장비를 만들었다. 이 장비는 공기 중의 전파를 변조하여 정보를 송신하는 장치로, 음파가 진동판을 진동시키면 그 떨림이 공명기를 변화시켜 전파를 변조한다. 정보 인식 및 저장 기능은 없었지만 전파 변조를 통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장비가 RFID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미국 정부가 핵 설비의 장비 및 작업자 식별에 RFID 기술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1973년 마리오 카둘로가 특허를 취득한 장비야말로 진정한 RFID라고 할 수 있다. 메모리를 갖추고 전파로 통신하는 RFID의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둘로의 특허는 전파, 음파, 빛까지 통신에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포함하고 있었다. 같은 해, 로스 알라모스 국립 박물관에서 스티븐 뎁 등은 제한된 출력의 RFID 기술을 최초로 시연했다. 1980년대부터는 육우용 소의 귀에 태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91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 고속도로에 RFID를 이용한 통행료 시스템이 개통되었다. 이 기술은 후에 하이패스 등의 시스템으로 발전된다. 이 이후로 RFID기술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퍼지기 시작하였다.
구조 및 구분: RFID는 판독 및 해독 기능을 하는 판독기(Reader)와 정보를 제공하는 태그(Tag)로 구성된다. 태그는 제품에 부착되는 장치로 이 태그 안에 생산·유통·보관·소비의 전 과정에 대한 정보를 담는다. 그 다음 판독기를 가져다 대는 방식으로 정보를 획득한다. 판독기에 있는 안테나가 태그의 정보를 수신할 수 있다.
RFID 기기는 정보 인식 형태에 따라 능동형과 수동형으로 나뉜다. 능동형 RFID는 자체적으로 배터리를 가지고 있어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수동형 RFID는 전력을 공급받기 위해 다른 통신망이나 전력 노드 등을 필요로 한다. 또한 능동형 RFID에 비해 메모리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다. RFID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파를 이용해 신호를 받아들인다. 이 주파수의 형태에 따라 주로 사용하는 용도가 바뀐다. 주파수가 변경되면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바뀌기 때문이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13.56MHz 주파수는 0.7에서 1미터 내외, 135kHz는 약 0.5미터 이하, 860~960MHz는 3미터에서 5미터, 2.45GHz는 1에서 1.5미터 그리고 433.92MHz는 수백 미터, 길게는 수 킬로미터까지의 거리를 인식할 수 있다.
장점: RFID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우선 편하다는 것이다. 바코드 리딩 방식으로 하나하나 확인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여러 제품을 동시다발적으로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는 각 RFID 태그에서 나오는 고유정보를 그래픽으로 확인 및 식별하는 기술이 접목되었기 때문이다. 생산과정은 물론이고 각 병원·약국 등으로 운반을 마친 이후라도 제품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앉은 자리에서 파악할 수 있다.
RFID는 인공위성이나 이동통신망과 연계해 정보시스템과 통합하여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실시간으로 정보 파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RF판독기는 1초에 수백 개까지 RF태그가 부착된 제품의 데이터를 읽을 수 있다. 즉 대형 할인점에 적용될 경우 계산대를 통과하자마자 물건가격이 집계돼 시간을 대폭 절약할 수 있게 되는 것. 한 번 정보가 입력된 이후에도 수정하거나 삭제가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갑론을박
정부는 태그를 수정할 수 있는 기능과 바코드 리더로는 불가능한 광역 위치추적 기능을 높이 사 RFID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RFID 기술은 제약 분야를 제외하더라도 대중교통 요금징수 시스템·각종 전자 요금징수 장치·동물 추적 장치·자동차 안전장치·개인 출입 및 접근 허가장치·보안장치·물건 출납 이력 확인·생산관리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될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유통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의약품 유통에도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선택에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단순히 프린터와 리더만 있으면 되는 바코드 리딩 기술과 달리 RFID 기술은 주파수에 맞추어 설정을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기존에 생산하던 바코드 물류들을 모두 RFID로 교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잘 유지해오던 바코드 리딩 시스템을, 그것도 2D 바코드 리더로 교체한 지도 얼마 되지 않는데 다시 변경해야 하느냐는 볼멘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관계자들이 도입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효율성 때문이다. 기존 바코드를 RFID로 변경하는 데에 드는 비용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
실제로 RFID기술은 판독기 가격대가 저렴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신호를 받아들일 수 있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가격이 높아지는데, 가장 먼 거리에서 통신이 가능한 433.92MHz 주파수의 경우 적지 않은 가격을 감당해야만 한다. RF태그는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하나 그만큼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지식경제부에서 △향후 2년간 RFID 구축비용 중 40%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고 △RFID를 도입한 제약사에게는 투자금액의 7%에 해당하는 세액 공제를 지원한다고 밝힌 것도 초기 투자비용에 대한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편 지식경제부는 RFID에 비해 오히려 바코드 리딩 기술의 효율성이 좋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RFID 태그는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일회성을 띠는 바코드에 비해 장기적으로 유리하며, 바코드 리딩 기술은 약 0.1미터 미만의 거리만 판독할 수 있어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검사를 위해서는 인간의 수고가 크게 발생하는 반면 RFID 기술은 필요에 따라 훨씬 먼 거리까지 전송할 수 있어 인건비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었다.
물과 기름, 바코드와 RFID
바코드 리딩 기술과 RFID는 물품의 위치와 상태를 관리할 수 있다는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활용할 수 있는 분야도 비슷하다. 하지만 두 기술이 가진 차이점은 굉장히 크다.
RFID와 바코드 리딩 기술은 우선 정보를 획득하는 방식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바코드가 빛을 이용해 레이저나 렌즈로 자료를 판독하는 반면 RFID는 전파를 이용한다. RFID 기술은 전파가 가진 특성 덕에 바코드 판독기처럼 짧은 거리에서만 작동하지 않고 먼 거리에서도 태그를 읽을 수 있으며, 심지어 태그와 판독기 사이에 있는 물체를 통과해서 정보를 수신할 수도 있다.
가격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RFID는 판독기와 태그를 모두 구매해야 하기에 초기 설치비용이 큰 편이다. 특히 태그는 제작이 비교적 쉽지 않아 그만큼 단가가 비싸다. 매일 출하되는 모든 제품에 부착하여야 하므로 보통 천문학적인 액수를 필요로 한다. 반면 바코드 리딩 기술의 경우 초기 설치비용이 매우 저렴하여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RFID는 태그에 부착된 정보를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있어 재사용이 용이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한 번 부착되면 정보의 수정이 불가능한 바코드와 비교하였을 때 큰 장점이다. 바코드는 센서를 작동시킬 수 있는 거리가 짧고 한정되어있는 반면 RFID는 인공위성이나 이동통신망과 연결하여 정보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차이점도 있다. 제품에 바짝 붙어 검사를 수행할 필요가 없는 만큼 인건비가 대폭 절약된다.
2013년 코앞… 업체들 ‘고뇌’
RFID냐, 바코드냐 하는 제약업체들의 고민은 점점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가 2013년부터 의약품용 2D 바코드나 RFID를 부착하도록 의무화하였기 때문이다. 당장 반년도 남지 않은 시기이기에 업계는 더욱 혼란스럽다. 현재까지 RFID 생산 시스템을 차용한 제약업체는 많지 않다. 한미약품, 일동제약, 한국콜마 등이 이들이다. 이들 업체는 전반적으로 시스템에 대한 만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제약업체 종사자는 바코드를 이용하였을 때보다 약품의 재고 파악·유통기한 확인·부적합 약품 식별 등에서 확연히 빠른 속도를 드러냈다고 밝혔다. 이는 각 제품마다 아이디를 부여해 광범위하게 추적할 수 있는 RFID의 특징 덕이다.
반면 의약품용 2D 바코드(확장바코드)를 채택하는 제약업체들은 RFID의 만만치 않은 비용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최근 의약품 가격이 하락되어 업계 전체가 가라앉아있는데 신기술을 위해 섣불리 큰돈을 쓰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지식경제부에서 지원하는 금액들을 계산해보아도 수지가 맞지 않아 투자가 저어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RFID 기술은 아직 해외에서도 접목된 사례가 드물어 2D 바코드 기술을 이용했을 때 약품 관리가 훨씬 유용하다고도 하였다.
현재 제약업계는 몇몇 업체가 RFID 기술 쪽으로, 몇몇 업체가 의약품용 2D 바코드로 가닥을 잡아가는 과도기에 있다. 초기 투자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적은 관리비용으로 제품을 쉽고 정확하게 관리하기 위해 RFID로 나아갈 것인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성능 면에서 뒤지지 않으며 아직까지는 해외 각국과 소통이 용이한 2D 바코드 기술을 쥘 것인지가 선택의 관건이다. 각 업체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글 |윤진근 기자 pen@automotivemnt.com



